고등교육은 개인의 삶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에도 직결되는 핵심 요소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대학 등록금은 여전히 가계 부담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대학 등록금 무상화’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교육 불평등을 완화하고, 저소득층의 사회 이동 사다리를 복원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반면, 국가 재정 여건과 형평성 문제를 고려할 때 ‘선택적 지원’이 더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이라는 반론도 존재합니다. 대학 등록금 지원 정책은 단순한 예산 배분의 문제가 아닌, 사회 철학과 교육 가치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쟁점입니다. 이 글에서는 교육 불평등 완화의 필요성, 등록금 무상화의 비용과 재정 한계, 그리고 선별적 지원의 장단점을 중심으로 현 논쟁을 분석합니다.
교육 불평등과 고등교육 접근성 문제
한국은 높은 교육열과 상대적으로 낮은 공교육 투자율이 공존하는 국가입니다. OECD 평균과 비교할 때도 한국의 고등교육에 대한 공공 지출 비율은 낮은 편이며, 등록금은 미국에 이어 세계 최고 수준에 속합니다. 이러한 구조는 중·저소득층 학생들의 고등교육 접근성을 제한하는 주요 요인입니다. 실제로 대학 진학률 자체는 높지만, 사립대 비중이 크고, 장학금 제도의 사각지대가 존재하면서 많은 학생들이 학자금 대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졸업 직후부터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이르는 채무를 떠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며, 이는 소비 여력 감소와 사회 진입 지연이라는 악순환을 초래합니다. 등록금 부담은 특히 비수도권·저소득층 가정에 더 큰 장벽으로 작용하며, 결국 고등교육의 기회 불평등을 심화시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등록금 무상화는 단지 비용 경감이 아닌, ‘공정한 출발선’을 제공하기 위한 구조적 개혁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등록금 무상화의 재정 부담과 한계
대학 등록금 전면 무상화는 이상적 목표처럼 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막대한 재정이 소요됩니다. 현재 기준으로 전국 대학 재학생 수는 약 200만 명이며, 평균 등록금은 약 670만 원에 달합니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연간 약 13조 원 이상이 필요한 수준이며, 이는 한국 교육부 전체 예산의 25%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게다가 이 비용을 모두 국고로 충당한다면, 보육, 초중등 교육, 직업훈련 등 다른 교육 분야와의 균형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보편적 무상화’가 고소득층 자녀에게도 혜택을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조세 재정의 형평성 원칙상, 여유 있는 계층까지 세금으로 등록금을 지원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됩니다. 실제로 북유럽 일부 국가는 무상 고등교육을 시행하고 있지만, 그만큼 고세율 구조와 강력한 조세 신뢰 기반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조세저항과 한정된 재정을 고려할 때, 전면 무상화는 정치적·제도적 부담이 크며,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 없이 추진하기엔 위험 부담이 높다는 분석도 많습니다.
선택적 지원의 효율성과 개선 과제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정부는 ‘선택적 지원’, 즉 소득 수준에 따라 등록금을 차등 지원하는 방식을 유지해 왔습니다. 현재도 국가장학금, 다자녀 장학금, 저소득층 대상 1유형 장학금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며, 전체 대학생 중 절반 이상이 일정 수준의 등록금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이 방식은 한정된 재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적 합리성이 있습니다. 특히 대학 교육이 소득 향상과 직결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소득 재분배 효과를 극대화하는 구조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집니다. 그러나 선택적 지원 방식도 한계가 명확합니다. 첫째, 소득 산정 기준이 복잡하고, 실제 생활 형편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둘째, 중산층은 소득이 일정 기준을 넘는다는 이유로 지원에서 배제되지만, 실제 체감 부담은 여전히 큽니다. 셋째, 매년 예산 범위에 따라 지급 기준이 달라지는 등 예측 가능성이 낮아, 학생과 학부모 모두에게 불안 요소가 됩니다. 따라서 선별적 지원을 유지하더라도, 소득구간의 세분화, 공정한 소득 평가 체계, 장기적인 재정 계획 등을 통해 제도의 신뢰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보완이 필요합니다.
대학 등록금 정책은 단지 비용 부담 경감이 아닌, 교육을 통해 사회이동과 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무상화는 상징적 효과가 크고, 선택적 지원은 재정적 실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해답은 극단적 선택이 아니라, 두 제도의 장점을 조합한 균형 있는 모델을 모색하는 데 있을 것입니다. 공공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확대하면서도, 재정의 효율성을 확보하는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