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신용점수는 단순히 ‘대출 한도를 결정하는 숫자’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그 의미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신용점수는 단순한 금융 평가지표를 넘어 일종의 ‘자산’이자 ‘사회적 레벨’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신용점수가 낮다는 이유만으로 기본적인 금융 접근이 제한되고, 자산 형성의 기회에서 소외되는 이들도 존재합니다. 특히 MZ세대와 사회초년생들은 불안정한 소득 구조와 짧은 금융 이력으로 인해 낮은 점수를 받기 쉽고, 이는 ‘신용 점수→대출 기회→자산 형성’이라는 구조에서 가장 취약한 고리가 됩니다. 이 글에서는 대출 규제 하에서 신용점수가 갖는 역할 변화, 신용의 자산화 경향, 그리고 그로 인한 사회적 격차 문제를 살펴보고, 앞으로 어떤 대응이 필요한지를 짚어보겠습니다.
대출 규제와 신용점수의 결정적 역할
2020년 이후 정부는 부동산 과열과 가계부채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강도 높은 대출 규제를 시행해 왔습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확대,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제한, 고신용자 중심의 대출 승인 조건 강화 등은 실수요자와 무주택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신용점수’는 대출 승인 여부와 한도를 결정하는 핵심 지표로 부상했습니다. 과거의 ‘신용등급제’가 폐지되고 1점 단위의 ‘신용점수제’로 전환되면서, 보다 정교한 평가가 가능해졌지만, 동시에 점수에 따른 차별도 더욱 민감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850점 이상이면 은행의 우대금리 상품과 높은 한도를 받을 수 있지만, 700점 이하라면 제1금융권 대출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문제는 이 점수가 단순히 채무 이행 여부뿐 아니라, 금융 거래 빈도, 통신비·공과금 납부 실적, 체크카드 사용 패턴 등 다양한 요소로 평가되며, 일정 부분 ‘금융 리터러시’에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금융 정보에 취약한 계층에게 불리한 구조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신용의 자산화와 금융격차 심화
신용점수는 이제 ‘자산 형성의 사다리’를 오르기 위한 필수 요건이 되었습니다. 대출은 주택 구입, 창업, 학자금 마련 등 생애주기별 경제 활동의 중요한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용점수가 낮으면 이러한 기회 자체가 차단되거나, 비싼 이자와 함께 제2·3금융권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다시 신용에 부정적 이력이 쌓이며 ‘신용의 낙인 효과’가 작동하게 됩니다. 반면 고신용자는 금융기관으로부터 우대 혜택을 받으며, 저금리 대출, 한도 확대, 신용카드 포인트, 보험료 할인 등 다양한 금융적 이점을 누리게 됩니다. 즉, 신용점수는 단지 평가 점수가 아니라 ‘금융 접근권’을 좌우하는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는 셈입니다. 특히 2030세대는 신용점수가 낮다는 이유로 내 집 마련 기회를 놓치거나, 전세자금 대출에서 탈락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자산 격차로 직결됩니다. 실제로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신용점수 상위 20%와 하위 20%의 금융 자산 격차는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금융이 ‘기회의 촉매’가 아니라, ‘계층 고착화의 매개’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신용평가 제도의 보완과 대안 모색
문제는 ‘신용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는 점입니다. 많은 청년과 자영업자는 일정한 소득이 없거나, 금융 거래 이력이 부족해 신용점수를 올리기 어렵고, 대출 규제 강화 속에서는 금융권 문턱이 더욱 높아집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신용평가 시스템 자체의 보완과 사회적 안전망 강화가 필요합니다. 첫째, 비금융정보(비금융 데이터) 활용 범위를 확대해야 합니다. 통신료, 관리비, 전기세 납부 실적과 같은 생활 기반 정보가 더 적극 반영된다면, 기존 금융 거래가 없는 계층도 일정한 신용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신용회복을 위한 제도적 경로를 마련해야 합니다. 한 번의 연체나 사고가 장기적으로 신용에 악영향을 주지 않도록, 교육·컨설팅·맞춤형 채무조정 제도를 확충해야 합니다. 셋째, 디지털 금융 환경에 맞춘 신용 교육이 강화돼야 합니다. 신용점수가 단지 ‘갚는 능력’이 아니라 ‘관리하는 기술’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며, 학교·군대·기업 내 금융교육 체계화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무주택 청년층, 취약 계층 등을 위한 정책금융과 보증 프로그램을 보다 과감하게 확대해, 금융 포용을 실현하는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신용점수는 더 이상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대출 규제 시대에 신용은 곧 기회이며,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열쇠는 누구에게나 같은 모양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사회는 신용점수를 자산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모두에게 제공해야 하며, 개인 또한 이를 관리하고 이해하는 주체로 성장해야 합니다. 신용은 족쇄가 아닌 도약대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