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의 초완화적 통화정책과 그에 따른 급격한 엔화 약세, 이른바 ‘엔저(円低)’가 다시금 세계 경제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것과 달리, 일본은 제로금리에 가까운 기준금리와 대규모 국채 매입 정책을 유지하며 엔화 가치를 의도적으로 낮추는 스탠스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엔저 현상은 일본 내수경제에는 일정 부분 도움이 되지만, 이웃 국가인 한국에는 복합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수출 경쟁력, 물가 상승 압력, 통화정책 선택지까지 영향을 받는 가운데, 과연 일본의 엔저는 한국에 득이 되는가, 실이 되는가? 이 글에서는 그 다층적인 구조를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수출 경쟁 구조에서의 한일 격차 심화
엔저는 일본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극대화시킵니다.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 일본 제품은 해외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해지고, 이는 동일 시장에서 경쟁하는 한국 기업에 큰 위협이 됩니다. 특히 자동차, 전자, 기계, 철강 등 양국이 격돌하는 산업군에서는 엔저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같은 품질의 자동차를 놓고 볼 때, 일본 기업은 엔저로 인해 원가절감이 가능하며, 가격 인하를 통해 점유율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한국 기업은 원화 강세나 고정환율 속에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집니다. 실제 2023~2024년 기간 동안, 일본은 동남아시아, 유럽 시장에서 자동차·건설기계 수출 비중을 확대했고, 이로 인해 한국의 일부 수출 품목은 타격을 받았습니다. 더 나아가, 글로벌 기업들이 원가 절감을 위해 일본 기업과의 거래를 확대하면서, 중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공급망 내 한국 기업의 입지가 약화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수출 경쟁 구조에서의 엔저는 단순한 환율 문제가 아니라, 산업 지형과 무역 흐름을 바꾸는 요인입니다.
수입 물가 상승과 내수 소비 압박
일본의 엔저는 원화 약세를 자극하며, 한국 내 수입 물가 상승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한일 간 환율 차이가 커지면 외환 시장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외국인 투자 자금은 환차익을 노리고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는 원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며, 원유, 식료품, 산업 원자재 등 주요 수입 품목의 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실제 한국은행은 2024년 이후 연이은 물가 상승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원화 약세와 연동된 수입 물가 상승을 지목한 바 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동일 제품에 대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이는 실질 소비 여력 감소로 이어집니다. 특히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원재료 비용 상승으로 인해 제품 가격 인상 또는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으며, 이는 내수 경기 위축을 가속화시킵니다. 엔저가 단기간 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일본발 투자 수요 확대’라는 착시를 줄 수는 있지만, 한국 경제에는 실질 구매력 하락이라는 부정적 신호를 줄 가능성이 더 큽니다.
한국 통화정책의 대응 한계와 과제
일본이 초저금리를 유지하는 가운데 미국과 유럽은 여전히 높은 금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그 중간에 위치한 애매한 입장에서 통화정책의 자율성이 제한받고 있습니다. 일본의 엔저로 인해 한미 금리차는 물론 한일 금리차까지 확대되면, 외환시장에서 원화 약세 압박이 커지고,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올려야 할 유인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가계부채 규모가 GDP의 100%를 넘는 수준이며, 기준금리를 무작정 인상할 경우 내수 경기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일본의 엔저는 한국의 금리 결정, 외환시장 안정 대책, 물가 관리까지 모두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는 요인입니다. 더욱이 한국과 일본은 단순한 경쟁국을 넘어 상호 수출입 규모가 큰 경제 파트너이기도 합니다. 일본 제품의 가격이 낮아지면, 한국 수입기업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 가격 메리트를 누릴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산업 생태계 경쟁력 약화를 우려해야 합니다. 이에 따라 한국은 단기적 외환시장 개입, 중장기적으로는 수출 다변화, 산업 경쟁력 강화, 고부가가치 산업 구조 전환 등의 정책 대응이 필요합니다.
일본의 엔저 정책은 한국에 일부 득이 되는 요소도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중장기 리스크가 더 크다는 평가가 우세합니다. 수출 경쟁력 약화, 수입 물가 상승, 통화정책 자율성 제한 등은 모두 한국 경제의 체력을 갉아먹는 요인입니다. 이제 한국은 일본의 통화정책을 외부 변수로만 보지 않고,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구조적 전략을 세워야 할 시점입니다. 고환율 방어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경쟁력 있는 산업 육성과 금융시장 안정성 확보, 민생 물가 통제 등 다각적 해법이 병행되어야 이 복잡한 국면을 넘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