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빈곤 현실 (반지하 주택, 옥탑 고시원 문제, 주거 정책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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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빈곤 현실 (반지하 주택, 옥탑 고시원 문제, 주거 정책 한계)

by 쉬운 경제 이야기 2025. 7. 27.

서울 한복판, 화려한 고층 아파트 단지 아래에 숨겨진 또 하나의 도시 모습이 있습니다. 바로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 거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입니다. 이른바 '비적정 주거'로 분류되는 이 공간들은 저소득층의 필수 거주지로 여겨지며, 한국 도시 주거 문제의 이면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 약 37만 가구가 반지하에, 약 6만 가구가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으며, 그중 상당수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습니다. ‘살기 위한 공간’이지만, 동시에 ‘탈출하고 싶은 공간’이기도 한 이 주거 형태는 단순한 빈곤 문제를 넘어 구조적인 사회경제적 불균형을 반영합니다. 이 글에서는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등 주거 빈곤층이 처한 현실과 그 경제적 구조, 그리고 정부의 정책적 한계를 중심으로 심층 분석해 봅니다.

 

주거 빈곤, 주거 정책 한계

반지하 주택의 현실과 위험 구조

반지하 주택은 흔히 ‘반쪽짜리 지상’이라 불리며, 창문 하나로 간신히 햇빛과 공기를 통하게 한 구조입니다. 과거엔 지하 공간을 활용한 일종의 효율적 설계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명백한 주거 취약 공간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특히 2022년 서울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서 일어난 수해 참사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사회 전반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반지하 주택은 통풍이 불량하고, 곰팡이 발생률이 높으며, 침수 위험이 매우 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 보증금이 낮고, 월세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청년, 노년층, 한부모 가정 등 저소득 계층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유일한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반지하 주택의 평균 보증금은 약 1천만 원 이하, 월세는 30만 원 내외로 다른 형태의 주택에 비해 진입 장벽이 낮습니다. 그러나 이 낮은 비용 뒤에는 치명적인 주거 위험과 건강 악화, 안전 문제, 사회적 낙인이 뒤따릅니다. 문제는 이러한 공간이 여전히 수도권 도심에서 대규모로 존재하고 있으며, 정부의 정비 정책도 선언적 수준에 머물러 있어, 실질적인 개선 효과는 미미하다는 점입니다.

옥탑방과 고시원, ‘지붕 위의 삶’과 ‘벽 하나 없는 개인’

옥탑방은 도심 고밀 주거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간으로, 4~5층 건물 옥상에 철근과 컨테이너 자재 등으로 임시 구조물을 지어 주거 공간으로 활용한 형태입니다. 여름엔 40도를 넘는 실내 온도, 겨울엔 단열이 되지 않는 냉기로 인해 극한의 주거 환경을 견뎌야 하며, 실면적도 10㎡ 내외로 극도로 협소합니다. 주거 공간이라기보다는 ‘버티는 공간’에 가깝습니다. 고시원은 상황이 더 열악합니다. 대부분 창문이 없고, 공용 화장실과 샤워실을 사용하며, 1인당 면적은 4㎡ 안팎입니다. 고시원은 저렴한 비용으로 단기 거주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청년층이나 일용직 근로자, 고령자들에게 선택받고 있지만, 이들이 머무는 기간은 짧지 않습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고시원 거주자의 약 30%가 1년 이상, 15%가 3년 이상 거주 중입니다. 이처럼 고시원은 일시적 공간이 아니라, ‘반(半)영구적 거주지’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구조는 곧 ‘탈출이 어려운 빈곤’으로 이어지며, 주거와 소득, 건강, 고립의 악순환을 심화시키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주거 정책의 한계와 탈주거 빈곤을 위한 대안

정부는 2022년 반지하 주택을 단계적으로 퇴출하겠다고 발표하고, 공공임대주택 확대, 주거급여 강화 등의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실제 이행은 더딘 편이며, 공공임대주택의 공급 물량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입주 자격 요건이 까다롭고, 대기 기간이 길어 실질적인 대안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고시원 거주자를 위한 정책도 일부 존재하지만, 민간 업자의 자율 운영이라는 구조적 한계로 인해 제도적 개입이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당면한 주거 문제를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하는 사회적 인식입니다. 주거 빈곤은 단순히 돈이 부족한 문제가 아니라, 지역의 임대료 구조, 일자리 접근성, 주거지 선택권, 사회보장제도의 한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최소 주거 기준 강화, 주거 안전 점검 의무화, 주택 바우처 확대 등의 조치가 필요하며, 장기적으로는 지역 기반 사회주택 확대, 민간협력형 공공주택 모델 도입, 소득 연계형 임대료 체계 구축 등 포괄적 대안이 병행돼야 합니다. 특히 청년과 노인, 장애인 등 취약 계층을 위한 주거 맞춤 정책이 보다 정교하게 설계되어야, 진정한 탈(脫) 주거 빈곤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은 단지 비좁은 공간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빈곤과 불평등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누구나 인간다운 공간에서 살 권리가 있으며, 그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책임은 사회 전체에 있습니다. 이제는 주거를 생존의 문제가 아닌, 권리의 문제로 접근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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