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여행 환상 (탈노동 담론, 경제 현실, 자유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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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여행 환상 (탈노동 담론, 경제 현실, 자유의 이면)

by 쉬운 경제 이야기 2025. 7. 28.

“퇴사하고 세계여행 떠났습니다.” “회사 그만두고 제주에서 한 달 살기 해보세요.” SNS와 유튜브에는 퇴사 후 자유를 만끽하는 사람들의 콘텐츠가 넘쳐납니다. 이들은 반복되는 일상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삶의 진짜 의미를 찾았다고 말하며, 마치 퇴사가 곧 자유이고 여행이 곧 해방이라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하지만 과연 ‘퇴사 후 여행’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선택일까요? 그리고 그것은 정말 자유일까요? 이 글에서는 탈노동 시대를 상징하는 퇴사 여행 담론의 확산 배경과 그 이면에 감춰진 경제 현실, 그리고 ‘자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탈노동 담론과 ‘퇴사’ 콘텐츠의 부상

최근 몇 년 사이, 노동의 가치와 형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사회 전반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회사가 인생의 전부일 필요는 없다’, ‘소진되기 전에 떠나자’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퇴사는 더 이상 실패나 회피가 아닌 ‘선택과 선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미디어와 콘텐츠 시장에서도 빠르게 반영되었습니다. 다양한 유튜버와 인플루언서들이 퇴사 후 여행, 한 달 살기, 디지털 노마드 라이프 등을 공유하며 ‘회사 없는 삶’의 매력을 강조합니다. 이른바 탈노동 담론은 “일하지 않고도 존엄하게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지만, 현실에서는 주로 ‘노동을 유예하는 일시적 선택’으로 소비됩니다. 특히 퇴사 여행 콘텐츠는 특정 계층, 특정 시기의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제한적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보편적 대안인 것처럼 포장되면서 대중에게 착시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이는 노동에 대한 건강한 문제 제기와 동시에, 자칫 노동 자체를 회피 대상으로만 인식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퇴사 후 여행’이 감추는 경제적 현실

여행은 분명히 새로운 경험과 치유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여행이 ‘퇴사’라는 불확실성과 결합될 경우, 그것은 단순한 여유가 아니라 매우 불안정한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퇴사 후 여행을 선택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퇴직금, 단기 저축, 부모의 지원 등을 바탕으로 비용을 감당합니다. 그러나 여행 이후 재취업이 지연되거나, 계획이 어긋날 경우 이들은 경제적 불안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한국고용정보원 조사에 따르면, 20~30대 청년 중 퇴사 후 6개월 이내 재취업에 성공한 비율은 50%를 넘지 않으며, 이마저도 임금이나 직무 만족도가 퇴사 전보다 낮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다른 현실은 여행 콘텐츠 속 ‘자유로운 삶’이 사실상 SNS 콘텐츠 수익, 유튜브 광고, 온라인 쇼핑몰 등 새로운 형태의 노동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퇴사는 전통적인 고용 관계에서 벗어났을 뿐,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로의 전환일 뿐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처럼 퇴사 후 여행은 진정한 자유라기보다는 또 다른 방식의 생계 전략이며, 개인의 ‘자유’는 여전히 자본이라는 제약 아래 존재합니다.

 

퇴사 후 여행이 감추는 경제적 현실

자유의 의미와 탈노동 사회의 착시

근대 이후 자유는 자기 결정권, 시간의 자율성, 이동의 자유 등 다양한 형태로 논의되어 왔습니다. 퇴사 후 여행은 이 모든 요소를 상징하는 선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는 특정한 조건, 즉 최소한의 경제력, 건강, 가족의 이해, 사회적 안전망이 뒷받침될 때만 실현 가능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탈노동 시대에 대한 담론이 확산되면서 ‘노동 없는 자유로운 삶’에 대한 이상이 퍼지고 있지만, 현재의 구조에서 노동은 여전히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입니다. 퇴사는 일시적 유예일 뿐, 대부분은 다시 노동시장에 진입해야 하고, 그 진입의 문턱은 이전보다 더 높아졌습니다. 이처럼 ‘퇴사 후 여행’은 실제보다 훨씬 이상화되어 있으며, 이는 자유의 본질을 흐리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진정한 자유는 노동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그 노동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을 때 실현됩니다. 즉,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보다는 ‘일해도 괜찮은 사회’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퇴사의 로망보다 ‘노동의 존엄’을 되찾는 데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퇴사 후 여행은 하나의 선택일 뿐, 정답은 아닙니다. 그것은 잠시 멈춤일 수도,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지만, 결코 누구에게나 허용된 자유는 아닙니다. 진정한 자유는 불확실한 탈출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안정된 기반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탈노동 시대를 논하기 전에, 우리는 아직 ‘노동이 가치 있게 여겨지는 시대’를 먼저 만들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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