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척하자”에서 “있는 걸 숨기자”로. MZ세대의 소비 트렌드는 이제 전혀 다른 국면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한때 명품 소비, 슈퍼카 인증, 고급 레스토랑 리뷰 등으로 대표되던 ‘플렉스(flex)’ 문화가 퇴조하고, 그 자리를 가치 소비, 절약 소비, 경험 중심 소비가 대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유행의 변주가 아니라, 경제 상황, 사회 인식, 세대 정체성이 맞물려 형성된 구조적 전환입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복합위기 속에서 ‘가성비’보다 ‘가심비’를 추구하던 소비자들은 이제 생존형 소비를 고민하고 있으며, 이는 세대 간 소비 방식의 차이를 더욱 뚜렷하게 만듭니다. 이 글에서는 플렉스 소비의 퇴조 원인, 가치 지향적 소비 트렌드의 부상, 그리고 세대별 소비 차이의 본질을 중심으로 현재의 소비 패러다임 전환을 분석합니다.
‘플렉스’ 트렌드의 퇴조와 구조적 배경
‘플렉스(flex)’는 자신의 경제력과 취향을 과시하는 방식의 소비 문화를 의미하며, 2019년을 전후해 M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되었습니다. SNS를 통해 일상 속 명품 쇼핑, 고급 여행, 럭셔리 카페 등이 콘텐츠화되며, 소비가 곧 자아 표현이자 사회적 영향력의 지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트렌드는 최근 몇 년간 빠르게 수그러들고 있습니다. 첫째,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졌습니다. 고물가와 금리 인상으로 실질소득이 줄어들면서, 과시 소비보다는 실속 있는 소비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둘째, 플렉스 문화에 대한 피로감과 반작용이 나타났습니다. 과시성 소비는 타인의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하고, ‘진정성 없는 소비’라는 비판을 받으며 점차 이미지 소비로부터 거리 두는 문화가 확산되었습니다. 셋째, 기후위기, 사회윤리,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소비자의 관심은 ‘무엇을 사느냐’보다 ‘왜 사느냐’에 초점을 두게 되었습니다. 이제 플렉스는 더 이상 부의 상징이 아니라, ‘낡은 취향’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는 소비문화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합니다.
가치 지향 소비와 절약 트렌드의 확산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소비한다’는 태도는 이제 주류가 되었습니다. 환경을 고려한 친환경 제품 소비, 사회적 기업을 지지하는 소비,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화장품 구매 등은 이제 일부 소비자의 윤리적 선택이 아닌, 시장의 새로운 기준이 되었습니다. 또한, 경제적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절약 소비도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커피 한 잔을 사는 대신 텀블러에 직접 내려 마시는 습관, 외식보다 집밥, 새 옷 대신 리셀(resell) 플랫폼을 통한 중고 구매가 젊은 세대의 일상적 소비 패턴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의 콘텐츠에서도 ‘절약 브이로그’, ‘월 30만 원으로 사는 법’, ‘노브랜드 제품 추천’ 등 실용성과 절제된 소비를 강조하는 콘텐츠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이 흐름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비 태도는 단순한 절약이 아니라,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본질적인 가치에 집중하려는 의식적 선택입니다. 특히 2030 세대는 과거처럼 ‘소유’보다는 ‘사용’, ‘지출’보다는 ‘경험’, ‘과시’보다는 ‘취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소비의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습니다.
세대별 소비 차이와 라이프스타일의 분기점
이러한 소비 트렌드 변화는 세대 간의 인식 차이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기성세대가 ‘가진 만큼 쓰는 소비’에 익숙했다면, MZ세대는 ‘가치에 맞게 쓰는 소비’를 추구합니다. 1960~80년대 태어난 세대는 경제성장기와 자산축적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물질적 풍요를 성취의 상징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MZ세대는 자산 형성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며 소비를 통해 자기 효능감이나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 더 익숙합니다. 또한, Z세대(1995년 이후 출생)는 정보 접근성과 디지털 활용 능력이 뛰어나며, 브랜드 광고보다 사용자 리뷰나 SNS 후기를 더 신뢰하는 ‘참여형 소비자’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소비에 있어서도 ‘내가 주도하는 선택’을 중시하며, 가격 대비 기능을 따지는 전통적 소비보다도, 감정적 만족과 사회적 가치에 집중합니다. 4050 세대가 대형마트와 백화점 중심의 소비를 한다면, MZ세대는 온라인 플랫폼, 당근마켓, 브랜드 협업 굿즈, 소규모 편집숍 등 새로운 방식의 소비 경험을 선호합니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닌, 삶의 방식과 세계를 인식하는 태도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며, 소비를 통해 세대 정체성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합니다.
‘플렉스’는 단순히 사라진 유행이 아니라, 경제와 사회가 새로운 소비 철학으로 옮겨 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이제 소비는 ‘얼마나 비싼가’가 아니라, ‘얼마나 나를 잘 반영하는가’로 측정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가치, 지속가능성, 실용성이라는 키워드가 있습니다. 기업과 마케터는 더 이상 ‘과시 소비’를 겨냥할 수 없습니다. 시대는 소비의 세대교체를 요구하고 있으며, 그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시장을 여는 첫걸음입니다.